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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데즈다 크룹스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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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생애 == 1869년 2월 26일 [[러시아 제국]] [[상트페테르부르크]]에서 몰락 [[귀족]]의 딸로 태어났다. 귀족 혈통이었으나 빈곤하게 지냈던 어린 시절은 후일 그녀가 사회주의에 호감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. 1894년 [[마르크스주의]] 서클에서 배우자가 되는 [[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]]을 만났고 1896년부터 [[시베리아]] [[유형(형벌)|유형]]을 함께하면서 그곳에서 결혼하였다. 유형에서 돌아온 후 1903년부터 [[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]] [[볼셰비키]] 분파의 주요 활동가로 자리잡았다. 1905년에는 중앙위원회 서기가 되었으며 같은 해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후 프랑스로 [[망명]]해 교사로 일하다가 [[러시아 혁명]]기에 러시아로 돌아왔다.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중앙위원회 위원을 맡으며 주로 교육 업무에 관여하였다. 당시 소련의 문제점이었던 [[문맹]]을 퇴치하기 위해 학교를 대량 증설하고 [[도서관]]을 개방함으로써 소련의 교육 인프라 확충에 크게 기여하였다. 다만 독선적인 측면도 있어서 주코프스키의 [[동화]]에 대해 난잡하다면서 혹평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주코프스키가 한동안 동화를 쓰는 것을 포기했을 정도였다. [[이오시프 스탈린]]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이미 레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앙숙이었다. 스탈린이 당내 논쟁에서 [[레프 트로츠키|트로츠키]]에게 밀린다는 부담감에 그녀에게 전화로 직접 ‘창녀’, ‘매독 걸린 암캐’등 욕을 하면서 협박한 것이 시발점이었다. 이후 레닌은 이 사실을 알고 스탈린에게 절교하겠다고 경고했고 모욕을 당한 그녀는 [[집단지도체제]] 시기에 스탈린의 반대파 정치인들을 지원하였다.[[https://gall.dcinside.com/mgallery/board/view/?id=alternative_history&no=603574|#]] 다만 스탈린을 멈춰세울 정도의 정치력은 없어서 결국 스탈린이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신세가 되었고 [[대숙청]] 초기에는 [[니콜라이 부하린|부하린]]을 비롯한 고위급 당원들의 제명에 찬성하였지만 대숙청이 확산되어 동료 당원들조차도 [[굴라크]]로 끌려가거나 사형에 처해지는 등 일이 심심치 않게 돌아가자 대숙청을 멈추려는 시도를 했다. 그 결과 일부 당원을 구하기는 했지만 결국 당내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. 그러나 이때에도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사망했을 때 스탈린이 독살했다는 의혹이 나돌 정도였다.[* 대숙청이 한창 진행되었을 때 재판을 직접 참관하면서 이런 재판이었으면 남편도 처형되었을 것이라며 대놓고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. 그나마 레닌의 아내였기 때문에 시베리아로 추방 당하거나 처형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러한 불편한 관계 때문에 크룹스카야가 사망했을 때 스탈린이 독살했다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다.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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